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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기사> 중앙일보 "시설 부족 … 서민들 갈 요양소 20여곳뿐"
관리자
2004-12-18 오전 9: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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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부족 … 서민들 갈 요양소 20여곳뿐" 
 
[중앙일보 2004-12-06 06:36]  
 
 
[중앙일보] 지난 10월 초 서울 오류동에 사는 허모(92)씨는 치매에 걸린 아내(93)를 목 졸라 죽이고 자신도 목을 매 숨졌다. 

"○○아 미안하다. 살 만큼 살다 부부가 함께 떠나는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 78년이나 함께 산 처를 죽이는 독한 남편 허○○, 불쌍하도다." 


그는 자식들에게 이런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허씨 슬하의 7남매는 형편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부모를 서로 모시려고 할 만큼 효심이 깊었다고 한다. 하지만 허씨는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마다하다가 3년 전부터 막내아들과 같이 살았다. 노동일을 하는 아들의 일감이 떨어져 아파트 관리비조차 못내는 것을 알게 됐다. 부양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무료 요양시설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결국 허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우리의 보건의료체계는 허씨 부부 같은 치매노인이나 그 보호자를 도와주기에는 역부족인 것이다. 


?돌봐줄 시설도 사람도 없어=서울 삼전동에 사는 정모(85)씨는 7년 전부터 치매 증세를 보인 아내(78)를 단칸방에서 혼자 돌보고 있다. 2남3녀가 있지만 둘째딸이 매달 보내주는 30만원이 생활비의 전부다. 신용불량자인 큰아들 등과는 왕래가 거의 없다. 


장기간 서비스를 해주는 무료 요양시설에 맡기고 싶지만 극빈층(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이 아니라 불가능하다. 


현재 요양시설 이용자 4만여명의 대부분이 극빈층이다. 시설 운영 주체인 행정기관이 극빈층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정작 서민층.중산층이 갈 수 있는 노인요양 시설은 20여곳에 불과하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중풍환자 최모(82) 할머니도 극빈층이 아니어서 월 40만원을 내고 3개월짜리 단기 보호시설을 전전하고 있다. 언제 입소를 거부당할지 몰라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노인층이 많이 몰려 있는 지역의 경우 극빈층이라 해도 자리가 없다. 올 4월에 문을 연 서울 송파구 시립전문요양원의 경우 정원 80명은 벌써 찼고 대기자가 120명에 이른다. 


갈 곳 없는 노인들은 정부의 관리대상에서 제외된 미인가시설을 찾는다. 현재 500여곳의 미인가시설에서 700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일부에선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서울 봉천동 윤모(63)씨는 치매환자인 남편(70)을 돌보기 힘들어 경기도의 미인가시설에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시설 측에서 "밤에 배회하는 등 증세가 심해 돌볼 수 없다"며 남편을 사실상 쫓아내 집에서 간병하고 있다. 


최근 늘고 있는 노인전문병원을 이용하려면 극빈층이 아니면 한 달에 100만원 이상 든다. 극빈층의 본인 부담액도 10만~30만원 정도다. 


?긴 병에 효자.효부 없다=많은 노인환자는 적절한 간병을 받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다. 지난 10월 12일 서울 독산동 한 주택에서 치매를 앓으며 혼자 살던 80대 노인이 변시체로 발견됐다. 


중증 치매환자인 73세의 시아버지를 10년 넘게 간병해온 이모(47)씨. 아무리 잘해도 툭하면 욕설을 퍼붓는 시아버지 때문에 우울증까지 걸려 시설에 맡기려 했다. 그러자 남편과 시누이 등 모두 이씨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이씨는 "10년간 고생한 보람도 없이 나만 나쁜 사람이 됐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8월 서울 마포구의 한 주택에서 심모(42.노동)씨가 중풍으로 4년째 투병 중인 아버지(69)를 목 졸라 숨지게 했다. 그는 경찰에서 "순간적으로 '이렇게 살면 뭐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공적보험 도입 시급=전문가들은 일본.독일과 같은 공적노인요양보장체계의 구축을 대안으로 꼽는다. 치료.간병은 물론 목욕과 같은 일상생활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사회보험제도다. 본격 시행 시기를 2007년으로 잡고 있으나 준비 부족 등을 이유로 2010년으로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 


차흥봉(한림대 교수) 공적노인요양보장제도 실행위원장은 "예산 확보와 인프라 구축이 관건"이라며 "무엇보다 전 국민이 보험료를 내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데 사회 구성원이 합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매년 요양시설을 100곳씩 늘리려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삼척.울산 등 일부 지역에선 주민들이 "혐오시설"이라며 반대해 건립이 지연되고 있다.